10월 7일 민심수습과 국민계몽을 목적으로 광주시 금남로에서 전라남도의 기관지로 창간되었다. 그러나 1951년 12월 1일 귀속재산 소유권을 둘러싼 분규로 사옥과 시설 일체를 상실하여 정간하였다.
1952년 2월 10일 발행인 겸 편집 · 인쇄인 김남중(金南中)을 중심으로 ‘공정 · 정확 · 신속’을 사시(社是)로 내걸고 충장로의 가사옥(假社屋)에서 민간신문으로 재출발하였다. 속간호의 지령은 제395호(2월 11일자)였으며, 주필 겸 편집국장은 김남중이 겸임하였다.
같은 해 5월 20일 금남로 5가로 사옥을 옮겼다. 도내에서 최대의 부수를 발행하게 되면서 1956년 1월 1일부터 계속 증면을 하여 1958년 5월 1일자부터는 매일 4면 발행을 실시하고 사옥을 다시 충장로로 이전하였다.
1960년 7월 1일부터는 도내 최초로 조석간 6면(조간 2면, 석간 4면)을 발행하였으며, 1962년 8월 13일에는 정부의 단간제(單刊制) 시책에 따라 조간을 폐지하고 매일 석간 8면을 발행하였다.
1962년 12월 10일 ≪호남신문 湖南新聞≫이 폐간하자 그 사옥을 인수, 이전함으로써 창간 당시의 사옥과 일부 시설을 되찾았다. 1964년 4월 1일에는 전송사진수상기를 설치하고 같은 해 2월 3일자부터는 주당 40면으로 증면하였다.
1968년 9월 10일 고속윤전기 도입과 함께 부대시설의 자동화 및 최신활자로 지면을 전면쇄신하고 체재도 종전의 16단제에서 17단으로 바꾸고 1행 13자로 늘였다. 같은 해 10월 9일에는 도지(道紙)에서 전국지로 등록을 갱신하였고, 1969년 7월 16일에는 지방신문으로는 최초로 색도판인쇄를 실시하였다.
1968년 2월 8일부터는 자매지로 ≪주간소년≫을 타블로이드판 16면으로 발행하였으며, 1970년 10월 1일에는 ≪전일그라프 全日GRAPH≫를, 1971년 1월 28일에는 ≪전일연감≫을 발행하였다.
또, 1970년 1월 15일에는 전일문화연구원(全日文化硏究院)을 신설하였고 1971년 4월 24일에는 자매 방송매체로서 전일방송(全日放送)을 개국하였다.
그 밖에도 호남예술제 · 전국학생연극제 · 단축마라톤대회 · 미인선발대회 · 등산대회 · 전일원호대상 · 전일장한어머니선발대회 · 무등대상영화가요제 등의 여러 가지 연례행사를 주관하였다.
그러나 1980년 지방신문 통폐합조처에 따라 11월 29일자(제9,463호)로 종간하고 ≪ 전남매일신문 全南每日新聞≫과 통합, 12월 1일부터 ≪ 광주일보 光州日報≫로 새 출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