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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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식전(式典)에 사용하는 장막(帳幕)의 공급을 관장하던 관서.
이칭
  • 이칭사막(司幕), 충순호위사(忠順扈衛司), 충호위(忠扈衛)
제도/관청
  • 상급 기관
  • 설치 시기1466년(세조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범직 (건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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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식전(式典)에 사용하는 장막(帳幕)의 공급을 관장하던 관서.

내용

정4품 기관이었다가 뒤에 실제 주재관이 된 별제(別提)의 품계에 따라 종6품 기관이 되었다. 이와 같은 기능의 관서는 고려 목종 때에 설치된 상사국(尙舍局)에서 비롯된다.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이 복위하여 사설서(司設署)로 개칭하였으며, 공민왕 때에 다시 상사서(尙舍署)로 고쳤다가 다시 사설사로 고쳤다. 그 밖에도 고려시대에는 장막을 관장한 관청으로 수궁서(守宮署)가 있었다.

조선 초기에 들어와서는 사막(司幕)이라 칭하다가 1403년(태종 3)에 충순호위사(忠順扈衛司), 1414년에 충호위(忠扈衛)로 개칭되었다가 1466년(세조 12)에 전설사로 개칭되었다.

초기 관원으로는 제조(提調) 1인, 수(守, 정4품) 1인, 제검(提檢, 정 · 종4품) · 별좌(別坐, 정 · 종5품) · 별제(종6품)를 두었는데 합하여 5인이었다. 뒤에 제검과 별좌를 없애고 별검(別檢, 종8품) 1인을 두었다.

1715년(숙종 41)에는 수 · 별제를 없애고, 영조 즉위초에 별검을 올려 별제로 하고 1728년(영조 4)에 별제 1인을 다시 별검으로 고쳤다. 이속으로는 서원(書員) 1인, 제원(諸員) 14인, 사령(使令) 4인, 군사(軍士) 2인이 있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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