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4품 기관이었다가 뒤에 실제 주재관이 된 별제(別提)의 품계에 따라 종6품 기관이 되었다. 이와 같은 기능의 관서는 고려 목종 때에 설치된 상사국(尙舍局)에서 비롯된다.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이 복위하여 사설서(司設署)로 개칭하였으며, 공민왕 때에 다시 상사서(尙舍署)로 고쳤다가 다시 사설사로 고쳤다. 그 밖에도 고려시대에는 장막을 관장한 관청으로 수궁서(守宮署)가 있었다.
조선 초기에 들어와서는 사막(司幕)이라 칭하다가 1403년(태종 3)에 충순호위사(忠順扈衛司), 1414년에 충호위(忠扈衛)로 개칭되었다가 1466년(세조 12)에 전설사로 개칭되었다.
초기 관원으로는 제조(提調) 1인, 수(守, 정4품) 1인, 제검(提檢, 정·종4품)·별좌(別坐, 정·종5품)·별제(종6품)를 두었는데 합하여 5인이었다. 뒤에 제검과 별좌를 없애고 별검(別檢, 종8품) 1인을 두었다.
1715년(숙종 41)에는 수·별제를 없애고, 영조 즉위초에 별검을 올려 별제로 하고 1728년(영조 4)에 별제 1인을 다시 별검으로 고쳤다. 이속으로는 서원(書員) 1인, 제원(諸員) 14인, 사령(使令) 4인, 군사(軍士) 2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