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은 그 동안에 여럿 있었으나, 현대에 들어서 최종적으로 KT에서 그것을 담당하다가 2023년 12월 15일 '전보서비스'를 종료하였다.
전신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의 일로 주로 철도업무에 이용되었다. 1843년 웨스턴유니언회사가 전신사업을 독점 운영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 이외의 나라는 국영으로 운영되면서 정부 조직으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에 전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서로전선(西路電線)의 일부 구간에 속하는 경인간 전신선이 처음 개통되면서다. 이에 따라 전신업무를 관장하는 기관들도 설립되기 시작하였는데, 개통일인 1885년 8월 20일(양력 9월 28일)에 한성전보총국과 인천 분국이 개국되고, 이어서 평양(1월 29일)과 의주(11월 20일) 분국이 개국되었다. 1887년 3월 13일(양력 4월 6일) 전보총국 개국에 이어서 1888년에 남로전선이 개통되고, 공주 · 전주 · 대구 및 부산 분국이 속속 개국되었다.
서울에 한성전보총국과 함께 전보총국이 따로 있었던 것은 전자가 청국의 대관운영 형태이고 후자가 순수 한국정부 소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전신관련 기관에서 우편을 취급하지 않았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중단되었던 우편업무가 10여 년 만인 1893년 재개되면서 전신과 우편 업무를 총괄하는 전우총국을 설치하고, 1894년에는 공무아문 산하에 전신관장기구인 전신국과 우체관장기구인 역체국을 신설하여 기존의 한성전보총국과 전보총국에서 관할하던 전신업무는 전신국에서 관장하도록 하였다.
1896년 7월 23일 전보사 관제가 제정되고 1등사와 2등사로 구분하여 전국에 8개의 1등사와 충주 등 18개의 2등사로 나누어졌다. 1897년에는 한성전보사만을 한성전보총사로 개칭하고 무안(목포) · 삼화(진남포)의 1등사를 신설하는 한편, 그때까지 2등사였던 평양을 1등사로 편입시켰다.
이후 1905년 한일간에 강압된 통신협약이 체결되면서 통신권을 침탈당하게 되자 우편과 전신을 우편국(우체국의 명칭이 아닌)에서 취급하게 하고, 전신국이라는 단일 명칭의 기관은 사용되지 않았다.
한편, 국권이 완전히 침탈당한 1910년 11월 23일 목포무선전신소가 개소되어 무선에 의한 전신을 취급하는 관서가 최초로 개소되었으며, 1923년에 경성무선전신소가 개설되었다(후의 인천무선전신전화국의 전신). 1915년경부터 전화가입자가 증가하면서 우편업무와는 별도로 전신과 전화를 함께 취급하는 전신전화소가 개설되고, 1923년에는 경성우편국의 전화업무가 독립, 경성전화국이 창설되어 서울시내 모든 전화를 관할하게 되었다.
1939년에는 경성중앙전신국이 개설되면서 경성우편국에서 전신업무를 독립시켰다. 이때 경성우편국은 경성중앙우편국으로 개칭되었다. 그 뒤로 전신국이라는, 전보만을 독립으로 취급하는 기관은 1990년 현재까지도 서울중앙전신국뿐이며, 대부분 전화와 함께 전보도 같이 취급하는 전신전화국 또는 그보다 규모가 작은 전신전화취급소 등이 있다.
1957년에는 한글 TTY가 개통되면서 전신의 자동 송수신이 가능하게 되고, 이어 모사전보(배달되는 팩시밀리전보)가 도입되어 서비스가 다양해졌으며, 이어서 등장한 가입전신(telex)이 시작되자 문서통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화의 보편화와 컴퓨터의 등장으로 전신서비스는 점점 쇠퇴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보를 취급하는 전신국 또한 쇠퇴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긴급통신을 매개하는 기능보다는 경사나 애사 등의 사교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전화 115번으로 접수되기도 한다.
1990년 현재 전신국 1개 소, 무선전신국 5개 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