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막하에 들어가 금산싸움에 참전하고, 정유재란 때 첨사(僉使) 김덕흡(金德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전몽성(全夢星), 전몽진(全夢辰) 형제의 충절과 막내동생인 전몽태(全夢台)의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 정려 건립의 명을 받아 1898년 현위치에 건립하였다.
전몽성(1561∼1597)은 천안전씨(天安全氏) 방필(邦弼)의 아들로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서 출생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군기시주부 등을 역임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경명과 함께 금산싸움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었다.
뒤에 함평현감 및 이성(尼城: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현감을 역임하였고, 정유재란이 일어남에 아우 몽진, 첨사 김덕흡과 의병을 일으켜 영암·강진 지방에 침입해 온 적을 막아 싸우다가 1597년 영암군 해암포에서 함께 전사하였다. 숙종 때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전몽태(1571∼?)는 전몽성의 동생으로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고, 인조 2년(1624년)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웠다. 그 후 선전관에 제수됨과 아울러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의 표창을 받았다.
정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내부에 4매의 현판이 있고, 충효문 우측에 전몽성과 전몽태의 신도비 2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