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光州) 출생. 김채만(金采萬)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워 판소리 명창이 되었다.
스승 김채만이 이끄는 협률사(協律社) 공연에 참가하였고, 1912년 공창식(孔昌植)·박화섭(朴化燮) 등과 함께 광주협률사(光州協律社)를 조직하여 지방순회공연에 참가하였다.
「춘향가」를 잘하였으며, 또 『구운몽』일부를 판소리로 짜기도 하였다. 그의 「춘향가」와 「구운몽」이 담긴 음반이 일제 때 오케유성기판으로 발매되기도 하였다.
목이 양성(陽聲)이고 성량이 약하여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하였고, 주로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광복을 전후하여 별세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