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생. 젊어서 판소리를 배웠고, 뒤에 몇년 동안 신재효(申在孝)에게 판소리의 이론적 지침을 받았다.
「심청가」와 「숙영낭자전」을 잘 불러 당시 박만순(朴萬順) · 김세종(金世宗) · 이날치(李捺致)와 같은 명창과 어깨를 겨루어 이름을 떨쳤다.
그의 더늠은 「심청가」중에서 심청이 인당수에 빠졌다가 연꽃을 타고 세상에 나오는 대목인데, 이 대목의 사설은 신재효가 윤색한 것으로 동문수학한 김세종과 더불어 잘 불렀다.
순조 때 송만재(宋晩載)가 쓴『관우희(觀優戱)』에는 판소리 열두마당에 「숙영낭자전」이 보이지 않으나, 일제 때에 정노식(鄭魯湜)이 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는 판소리 열두마당에 「숙영낭자전」이 보인다.
「숙영낭자전」은 문체로 보아 본디 소설로 쓰여졌던 것을 뒤에 판소리 사설로 바꾸어 판소리로 불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소설 「숙영낭자전」을 판소리 「숙영낭자전」으로 짜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판소리 「숙영낭자전」은 전승이 끊어진 것 같고, 지금 전승되고 있는 「숙영낭자전」은 일제 때 정정렬(丁貞烈)이 짠 것과 1960년대 박동진(朴東鎭)이 짠 것이 있으나 그의 「숙영낭자전」과의 관련성은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