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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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
고려후기 중생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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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중생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내용

점숭(占崇)의 출신에 관한 사항이나 자세한 이력은 알 수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고려 명종 때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위치한 중생사의 승려였다고 한다. 그는 글을 모르는 문맹자(文盲者)였지만, 성품이 순수하고 깨끗해 향화(香火)를 부지런히 받들었다. 1173년(명종 3) 점숭은 중생사의 주지로 있었다. 이때 절을 빼앗으려는 어떤 승려가 친의천사(襯衣天使)에게 “이 절은 국가에서 은혜와 복을 비는 곳이니 마땅히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주관해야 한다”라고 호소하였다. 이를 옳게 여긴 친의천사가 점숭을 시험하고자 소문(疏文)을 거꾸로 주며 읽도록 하였는데, 그는 받은 즉시 펴들고 거침없이 읽었다. 친의천사가 탄복하고는 방 가운데로 물러앉아 다시 읽어보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점숭이 한 자도 읽지 못하였다. 친의천사는 점숭이 관음보살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절을 빼앗지 않았다. 『삼국유사』에서는 이 이야기가 점숭과 같이 살던 처사 김인부(金仁夫)가 고을의 노인들에게 전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편, 점숭이 주석했던 중생사는 관음신앙과 관련된 사찰로 고려시대 당시 기은도량(祈恩道場, 국가나 왕실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사찰)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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