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봉휘(鳳輝), 호는 무첨(無忝). 할아버지는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이며, 아버지는 정심(鄭杺)이다.
1648년(인조 26) 좌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연소하나 사행(士行)이 있다고 하여 조정에 천거하였다.
곧 교관(敎官)에 임명되었고, 다음해에 대군(大君)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효종이 즉위한 뒤 학행(學行)을 포상하여 자의(諮議)에 임명하였으나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갔다. 1657년(효종 8) 다시 자의에 임명되어 1년간 서울에 머무르다 사직하였다. 저서로는 『국조명신록』·『소대명신행적(昭代名臣行蹟)』·『소대수언(昭代粹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