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1367년(공민왕 16) 정언(正言)으로 재직할 때 공민왕과 신돈(辛旽)의 정책에 불만을 품었다고 하여 같은 직에 있던 안면(安勉),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신덕린(申德隣), 헌납 박진손(朴晉孫)·이전(李竱) 등과 함께 파면되었다.
1382년(우왕 8)에는 우왕에게 시국에 관하여 전반적인 내용을 상소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으며, 좌사의대부 박의중(朴宜中)과 함께 더욱 강력하게 왕의 덕치(德治)와 국내외 문제에 관한 상소문을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