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01년(순조 1) 교리를 거쳐 하정사(賀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청나라에 파견되었다. 그 뒤 경상우도암행어사를 거쳐 1803년 동래부사 때 뇌물을 받고 대마도(對馬島)와의 통신서계(通信書契)를 위조한 역관을 처벌하였다.
1807년 공충도관찰사를 거쳐, 1811년평안도에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발생하자 민심 수습을 위해 관서위무사(關西慰撫使)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민심 수습을 위한 호포(戶布) 징수상의 문제와 논공행상의 불철저로 일시 파직되었다가 곧 평안감사가 되었다.
감사로 있으면서 홍경래 관련 죄인들의 문초를 담당해, 이 기록을 『관서신미록(關西辛未錄)』이라 하여 임금에게 올렸다. 이것은 그가 올린 『계첩기략(啓牒記略)』과 함께 조정에서 이용한 홍경래난의 주요한 자료였다.
1815년(순조 15) 한성부판윤 이후 호조판서를 거쳐 1819년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로 나갔다가 다시 경직(京職)으로 돌아와 요직을 역임했고, 1829년 우의정이 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에는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淸白吏)로 불렸다 한다. 하지만 중앙에서는 국가 경제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호조판서·선혜청당상이 되어 명성을 떨쳤으나, 번세(煩細)에 얽매여 대체(大體)에 어두웠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현재 전하는 저서로는 『관서신미록』이 있다.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전고대방(典故大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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