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 직후 왕건(王建)이 신라의 옛 위계 사용을 벗어나서 태봉의 관계를 이어받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고려 초기의 독자적인 공적 질서체제로서 태조의 직속부하를 중심으로 하고, 고려 왕권에 복속한 친고려적 정치집단인 호족세력으로 조직한 문·무관의 관계였다. 이 관계는 936년(태조 19) 후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완성되었으며, 총 16관계 중 9위로 종4품에 해당된다.
그 뒤 광종 때 중국의 문산계(文散階)가 들어와 관계와 같이 쓰였는데, 주로 비관인층(非官人層)·지방호족들에게는 이 관계만 적용되었고, 중앙관인층은 문산계와 관계를 병용하였다.
백관공복(百官公服) 제정시 자삼(紫衫)에 해당되었으며, 976년(경종 1) 시정전시과(始定田柴科)의 실시에 따라 전시(田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