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20대왕 신종의 증손 서원후 왕영(西原侯 王瑛)의 딸이다. 서원후의 누이 1명은 충렬왕에게 출가하여 정신부주(貞信府主)가 되었고, 서원후의 딸은 충렬왕의 아들인 충선왕과 혼인하여 고려왕실 족내혼이 원간섭기까지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충선왕과 정비와의 혼인은 충선왕의 개인의사가 크게 반영된 것이었다. 충렬왕비이며 충선왕의 모후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원나라에 다녀오기 위하여 공녀를 차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서원후의 딸 정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자가 모후와 함께 원나라로 가는 도중에 온천에서 유숙하는데 세자의 안색이 좋지 못하므로 그 연고를 물으니, “내가 장차 서원후의 딸에게 장가들려 하였는데 지금 뽑힌 공녀에 들어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가 곧 서원후의 딸을 되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2년 뒤인 1289년(충렬왕 15) 15세의 나이로 충선왕은 정비를 세자빈으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원나라의 간섭기이므로 원나라의 공주가 아니면 왕의 제1비가 될 수 없었으므로, 정비는 충선왕과 제일 먼저 혼인하고도 원나라 공주 출신 왕비들에 이어 제3비로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성근친혼은 원나라 세조의 비난으로 연결되어 충선왕은 복위교서에서 동성금혼령을 선포하고, 대신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15개 가문의 재상지종(宰相之宗)을 선정하였다. 시호는 정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