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제3 왕비.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세자가 모후와 함께 원나라로 가는 도중에 온천에서 유숙하는데 세자의 안색이 좋지 못하므로 그 연고를 물으니, “내가 장차 서원후의 딸에게 장가들려 하였는데 지금 뽑힌 공녀에 들어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가 곧 서원후의 딸을 되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2년 뒤인 1289년(충렬왕 15) 15세의 나이로 충선왕은 정비를 세자빈으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원나라의 간섭기이므로 원나라의 공주가 아니면 왕의 제1비가 될 수 없었으므로, 정비는 충선왕과 제일 먼저 혼인하고도 원나라 공주 출신 왕비들에 이어 제3비로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성근친혼은 원나라 세조의 비난으로 연결되어 충선왕은 복위교서에서 동성금혼령을 선포하고, 대신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15개 가문의 재상지종(宰相之宗)을 선정하였다. 시호는 정비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시대의 후비』(정용숙, 민음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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