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제6 왕비.
인물/전통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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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제32대 우왕의 제6 왕비.
개설

판사 신아(申雅)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85년(우왕 11) 10월 혼인하였다. 우왕이 신아의 집에 들러 그 딸을 불러내어 보고, 며칠 뒤 왕비로 맞아들여 자주 신아의 집에 내왕하였다.

왕실과 혼인한 이후 신아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보임되는 등 정치적 소임이 증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왕은 신아가 남의 토지와 노비를 탈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신아의 아들 신효온(申孝溫)과 사위 박보령(朴保寧)을 잡아 옥에 가두어 내치고 각산(角山)에 유배한 일도 있었다.

우왕이 폐출된 뒤 정비도 사가에 돌아가게 되고 신아 또한 전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고려사』에는 우왕을 신돈(辛旽)의 아들이라 하여 고려의 국왕으로 보지 않고 왕위를 찬탈한 위조(僞朝)로 보아 반역열전에 수록하였기 때문에 우왕의 왕비들도 후비전에 수록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시대의 후비』(정용숙, 민음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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