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주1 호는 동와(東窩). 정진(鄭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정언신(鄭彦信)이고, 아버지는 참판 정협(鄭恊)이며, 어머니는 직장(直長) 조순명(趙順命)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2년 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도사가 되었다.
1608년 태학생(太學生)으로 있을 당시 호남의 유생 고경리(高敬履)가 성혼(成渾)이 정여창(鄭汝昌) · 김굉필(金宏弼) · 조광조(趙光祖) · 이황(李滉)의 4현(賢)의 도를 이어 받아 정주학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며 그의 신원을 청할 때, 이언적(李彦迪)을 논외로 함은 그의 학문적 업적을 깎아내리는 처사라고 그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1609년 승문원권지정자, 검열 등을 역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수찬을 거쳐 정언 · 도호부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