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족(士族)으로 향촌의 자제들을 동원하여 편대를 정하고 격문을 작성하여 의병을 규합, 900여명을 모집하여 의병대장이 되었다. 그 때 곽재우(郭再祐)는 의령에서, 권응수(權應銖)는 신령에서 각각 기병하여 서로 성원하였다.
그 해 7월 권응수의 지휘 아래 영천 의병장 정대임(鄭大任) · 정천뢰(鄭天賚) · 조성(曺誠) · 신해(申海) 등과 함께 영천 박연(朴淵)에서 왜적과 싸워 큰 전과를 거두고 영천성을 수복하였으나, 전공포상은 받지 못하였다. 이어 1592년 8월에 1차 경주성 탈환전투에 참전하였으나 패하였다.
이듬해 평양과 서울이 차례로 수복되자 군사를 조희익(曺希益)에게 맡기고 자양(紫陽)으로 돌아갔다.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에 의하여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사양하였고, 나중에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을 잠시 지내고 곧 사직하였다.
장현광(張顯光) · 조호익(曺好益) · 이준(李埈) 등과 학문을 토론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영천의 환고사(環皐祠)에 봉향되었으며, 그에 대한 『호수실기』가 있다. 시호는 강의(剛義)이다.
참고문헌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사마방목(司馬榜目)』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영천읍지(永川邑誌)』
- 『임진전란사(壬辰戰亂史)』
- 『호수실기(湖叟實記)』
- 『하당집(荷塘集)』 권7, 정세아 행장.(한국문집총간)
- 『경상북도사(慶尙北道史)』 상 (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198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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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가정37년무오식년추사마방목(嘉靖三十七年戊午式年秋司馬榜目)』(『연계방(蓮桂榜)』, 국립중앙도서관[古602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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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영천성 전투 시기 : 『선조실록』 30권, 1592년(선조 25) 9월 15일. "왜적과의 전투 내용을 담은 요동에 보낸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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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경주 탈환전 패배 : 『하당집(荷塘集)』 권7, 정세아 행장.(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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