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에 의하면, 초간본은 1책으로 송언신의 주도로 작성되었고 40여 년 후에 초간본에 빠진 자손들을 추가하고 그동안 늘어난 자손들을 등재하는 등의 보완작업을 하여 상하 2권의 재수보(再修譜)가 나오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족보의 기재 내용을 보면, 시조인 송유익 이하 19세손까지 기록되어 있고, 본종(本宗)인 경우는 성을 따로 쓰지 않음으로써 다른 성과 구별하였다. 각 인물에 대해서는 등과(登科) · 관작(官爵) · 향년(享年)과 분묘의 위치 등을 적었다.
이성(異姓)에 대한 기재는 4대에 한하였고, 파 이름은 지면의 서두에 기재하였다. 자녀는 남녀 구별 없이 연령순으로 기재하였다. 사위[女壻]의 전실(前室) 소생인지 후실(後室) 소생인지를 밝혔으며, 서자(庶子) · 서녀(庶女)도 표시하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 단자를 늦게 보내 온 자손들은 족보 끝에 추서(追書)하였다. 14세손까지는 양자 입양 사실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14세손 이후에는 양자 입양이 기록되고 있다. 이 세보는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심석리의 여산송씨 종회에 소장되어있다.
족보를 자녀가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하는 조선 전기 족보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장자에게 상속시키는 제도가 완전하게 정착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족보 가운데 17세기 이전의 족보가 희귀하므로 자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