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호조정랑, 승정원우부승지,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중립(仲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산(礪山: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 사망 연도1656년(효종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정랑|승정원우부승지|동부승지
  • 출생 연도1597년(선조 3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영 (중경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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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정랑, 승정원우부승지,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중립(仲立). 구(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승희(宋承禧)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송일(宋馹)이며, 어머니는 유영성(柳永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린 시절에 이미 경사에 통달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가 되고, 1623년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사헌부감찰 및 공조·예조·병조의 좌랑과 호조·예조·병조의 정랑을 지냈다. 1626년(인조 4)에 사간원정언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필선을 지낸 뒤, 1634년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이어 상의원정(尙衣院正)·승정원우부승지·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643년에 외직으로 나가 경주부윤, 1645년에 금성현감(錦城縣監)이 되었다. 이 때 도둑이 많은 금성지방의 토포사(討捕使)를 겸임하였는데, 법을 바르게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엄하지 않아 주민들이 법을 잘 지키게 되었다.

1648년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刑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 등을 거쳐 1652년(효종 3) 한성부우윤·도승지·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여 잠시도 부모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으며, 조정으로부터 연행(燕行: 청나라에 사신으로의 파견)의 명이 있자 왕의 윤허를 얻어 성묘를 하고 떠났다고 한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백헌집(白軒集)』

  • - 『설봉집(雪峯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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