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중립(仲立). 구(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송승희(宋承禧)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송일(宋馹)이며, 어머니는 유영성(柳永成)의 딸이다.
어린 시절에 이미 경사에 통달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가 되고, 1623년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사헌부감찰 및 공조·예조·병조의 좌랑과 호조·예조·병조의 정랑을 지냈다. 1626년(인조 4)에 사간원정언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지평·세자시강원필선을 지낸 뒤, 1634년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이어 상의원정(尙衣院正)·승정원우부승지·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643년에 외직으로 나가 경주부윤, 1645년에 금성현감(錦城縣監)이 되었다. 이 때 도둑이 많은 금성지방의 토포사(討捕使)를 겸임하였는데, 법을 바르게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엄하지 않아 주민들이 법을 잘 지키게 되었다.
1648년 형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刑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 등을 거쳐 1652년(효종 3) 한성부우윤·도승지·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여 잠시도 부모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으며, 조정으로부터 연행(燕行: 청나라에 사신으로의 파견)의 명이 있자 왕의 윤허를 얻어 성묘를 하고 떠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