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년(현종 5) 거란의 상온(祥穩)과 소적렬(蕭敵烈)이 통주(通州)에 침입하자, 흥화진(興化鎭)의 장군으로서 별장 주연(周演)과 함께 이를 격퇴시켰다. 이듬해 변공(邊功)이 있다는 도병마사의 주청에 따라 가급(加級)되었다.
1010년(현종 1) 제2차 침입 이후 거란은 현종의 친조(親朝)를 요구하였다. 현종의 친조는 거란에 항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없었다. 고려의 계속된 친조 거부로 거란 성종은 흥화진·통주·용주(龍州)·철주(鐵州)·곽주(郭州)·구주(龜州) 등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고려가 이에 불응하자 1014년 통주의 침입을 시작으로 1015년(현종 6)에 흥화진·용주·영주(寧州) 등을 차례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통주를 비롯한 다른 지역들 모두 거란의 침입을 격퇴시켰으며, 1015년 9월에 거란이 통주와 흥화진에 침입하자 정신용은 대장군으로서 별장 주연, 교위(校尉) 양춘(楊春) 등과 함께 700여명을 죽이는 큰 공을 세웠으나 전사하였다.
1016년(현종 7) 상서우복야 상주국(尙書右僕射上柱國)에 추증되고, 아들 정균백(鄭均伯)은 낭장 겸 상승봉어(郎將兼尙乘奉御)에 임명되었다. 이 해 11월에 양전(良田) 20결, 1020년(현종 11)에는 곡(穀) 300석을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