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입암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해 6월에 영덕으로 내려가 이한구(李韓久)·이지포(李芝圃) 등과 대구 등지에서 의병 600여 명을 규합, 거병한 뒤 청송·의성·영덕·영해·영양·평해·울진·삼척 등지를 전전하면서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아버지가 일본경찰에 잡혔다는 전갈을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경주로 가던 중 경주진위대에 잡혀 대구형무소에 체수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정용기를 잡기 위한 일제의 간계였다. 고종은 정용기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칙령을 내려 곧 석방시켰다.
그 뒤 항일운동의 재기를 다짐하고 흩어진 의진을 재규합, 정비한 뒤 영덕의 신태호(申泰浩)와 합세하여 청송·영천·청하·신령 등지에서 일본헌병분파소 등을 습격하여 많은 일본군을 사살하였다.
1907년 10월 입암에서 전개된 영천수비대와의 전투에서 이한구·손영각(孫永珏)·권규섭(權奎燮) 등과 함께 일본군의 흉탄을 맞아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驢隨筆)』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유공자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독립운동사』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독립운동사자료집』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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