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윤,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작(公綽)
인물/전통 인물
  • 본관온양(溫陽)
  • 사망 연도1566년(명종 2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헌|황해도관찰사|예조좌랑
  • 출생 연도1503년(연산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연모 (파주여자상업고등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윤,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공작(公綽). 정오(鄭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이손(鄭二孫)이고, 아버지는 통진현감 정수강(鄭壽綱)이며, 어머니는 진경원(陳敬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37년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듬해 다시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뽑혔다. 이어 승문원정자·저작·박사·전적을 거쳐, 호조좌랑·예조좌랑을 지냈다. 잠시 충청도도사로 나갔다가 공조정랑·집의가 되었다.

곧 직강이 되어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사섬시·장악원·내자시의 정을 역임하였다. 1546년(명종 1) 사인을 거쳐, 춘추관기사관으로 『중종실록』·『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사간이 되었다가 대호군으로 옮겼다. 홍문관에 들어가 교리·부응교를 지냈다.

1551년 직제학에서 통정대부로 승진되어 부제학을 거쳐 1554년 대사간에 이르고 그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 대사헌이 된 뒤 이어 한성부윤·황해도관찰사를 지냈으나 신병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삼사(三司)를 두루 거쳐 오랫동안 경연(經筵)에서 학문과 제왕의 길을 강론, 왕의 총애를 받았다.

참고문헌

  • - 『예종실록(睿宗室錄)』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서애집(西厓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청선고(淸選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