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석(景錫), 호는 고암(顧庵) 또는 순암(順庵). 정수강(丁壽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옥형(丁玉亨)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정응두(丁應斗)이며, 어머니는 군수 송충세(宋忠世)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2년(명종 7) 생원·진사양시에 모두 수석으로 합격하고, 1556년 알성문과에 장원하여 홍문관전적이 되고, 이듬해 정언에 이어 병조좌랑·수찬·지평·부교리·이조정랑을 역임하고, 1560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제도)하였다.
다시 부교리·사인·필선·장령·집의를 거쳐, 1566년 문과중시에 다시 장원하여 문명을 떨쳤다. 이듬해 판결사를 거쳐, 수년간 수령으로 근무하였다. 1578년(선조 11) 남양부사로 재직시에 경기감사로부터 관아의 공역(供役)이 번중(煩重)하다는 이유로 파직이 청하여졌으나 왕의 배려로 면책에서 그쳤다.
그 뒤 장단부사를 거쳐 예조·호조의 참의를 지내고, 1588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돌아와서 죽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특히 사륙문(四六文)에 능하여 한때 홍문관과 예문관의 서책을 많이 찬술하였다. 저서로는 『고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