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행지(行之). 정언각(鄭彦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척(鄭惕)이고, 아버지는 정문영(鄭文英)이며, 어머니는 홍순(洪純)의 딸이다. 정조(鄭造)의 동생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광해군 때 다시 설치된 독서당(讀書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제도)한 뒤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서 지평(持平)·헌납(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형 정조(鄭造)와 더불어 1613년 계축옥사 및 폐모론 등에 대북파의 일원으로 가담하여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 주동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교리·이조정랑 등을 거쳐 1621년에는 의주부윤으로 있었고,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총신(寵臣)이었던 죄로 의주에서 주살(誅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