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군길(君吉), 호는 행촌(杏村). 정연녕(鄭延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희검(鄭希儉)이고, 아버지는 호조참판 정언각(鄭彦慤)이며, 어머니는 신공제(申公濟)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수찬·교리·정언·지평·장령·사간·우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67년에 양사의 탄핵을 받아 상주목사에서 파직당하였다가, 1592년(선조 25)에 풀려나 중추부첨지를 지냈다.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598년에 지은 시 「기질공목문부(寄姪公牧文孚)」가 『수양세고(首陽世稿)』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