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일명 덕구(德耉). 자는 명준(明峻), 호는 성당(性堂). 보령 출신. 아버지는 정언주(鄭彦柱)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수만(李壽晩)의 딸이다. 한원진(韓元震)의 사숙문인이다.
1780년(정조 4) 학행으로 천거되어 광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임천(林泉)에 은거하면서 자연을 노래한 산중시를 많이 남겼고,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을 강론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정혁신의 심성론은 한원진의 학설을 지지하였고,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하락이수변화출입설(河洛理數變化出入說)」을 저술, 1년에 24절후가 변화하는 과정을 해설하였다. 또, 『대학』에 대해서도 『대학경의일득록(大學經義一得錄)』을 저술하였다.
일찍이 효행으로 이름이 났으며, 1790년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성당집(性堂集)』 5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