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정혜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특수형 석조 불탑.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토대(土臺)의 상면 중앙에는 1단의 석축이 마련되고 그 위에 4매석으로 구성된 높직한 2단의 방형 굄이 설치되었으며 그 위에 13층의 탑신을 받고 있는데, 이 2단의 굄돌은 곧 기단부 갑석 상면의 굄대 수법으로서 현재는 지대석과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즉, 이 받침석은 4매의 판석(板石)을 네 귀에 1매씩 놓아 결구하였으므로 신라석탑의 기단부 갑석의 조성수법과 동일한데, 높고 낮은 2단의 각형받침을 조출(彫出)한 것은 상층기단 갑석 위에 놓아 그 위에 탑신부를 받는 받침대로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재는 이 석탑에 기단부가 없으니 이 2단의 받침석이 지대석 또는 탑신굄석의 구실을 하고 있다.
탑신은 13층의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건립되었는데, 특히 초층의 탑신과 옥개가 큰 규모로 조성되고 그 위의 2층부터는 아주 작아져서 2층 이상이 부가물(附加物) 같은 감을 주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초층탑신은 네 귀에 큼직한 방형의 석주를 우주(隅柱: 모서리기둥)로 세우고 그 안에 양측으로 우주에 붙여서 역시 1석씩으로 된 작은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그 위에 인방(引枋), 아래에 하방(下枋)을 걸쳤는데, 그 사이의 공간은 내부가 막혀 있고 이러한 시설은 4면에 모두 같은 방법으로 설치되어 있다.
초층옥개석은 옥석(屋石)과 그 하면의 받침 부재가 별석(別石)으로 구성되었는데 옥석은 8석, 받침부는 4매의 층급(層級)받침으로 결구되었다. 받침은 3단이며 통식(通式)인 각형으로 규모가 큰 옥개석을 따라서 자연히 큼직하게 마련되었으며, 옥개석 하면에는 낙수홈[落水溝]이 없다.
처마는 신라석탑의 특징을 따라 직선을 이루었으며 네 귀의 전각(轉角)에 경쾌한 반전이 있고, 낙수면(落水面)은 평박하며 4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에는 합각머리[合閣頂: 합각 박공이 용마루에서 서로 맞닿는 부분]가 예리하게 표현되었다.
초층옥개석 위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1단의 굄돌을 놓아 그 위로 2층 이상의 탑신을 받고 있는데, 이 굄 판석은 곧 거대한 초층부와 구별하려는 의도인 것 같으며, 이것으로써 상부와 하부의 연결이 더욱 짜임새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2층 이상의 탑신은 각 탑신과 옥개석이 급격히 위축되어서 마치 초층부에 부가된 상륜부(相輪部)같이 보인다. 이들은 각층의 탑신·옥개가 1석으로 조성되었는바, 각 탑신은 더욱 낮고 작아 옥개석 정면(頂面)에 마련한 탑신받침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각 층 옥개석 하면의 받침은 3단씩으로 초층의 받침수와 같고 옥개석 각 부의 양식도 동일하여 하면에는 낙수홈이 없고, 처마는 직선으로서 평박한 낙수면과 네 귀 전각의 반전 등과도 잘 조화되어 전체적으로 경쾌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노반[露盤: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 1석이 남아 있을 뿐인데 그 모양은 일반적인 형식이다.
특징
이 석탑의 각 부 양식과 조성수법을 검토하여 그 건조연대를 추정해보면, 우선 초층부는 목조탑파(木造塔婆)를 모방한 듯한 예스런 세부(細部)를 지니고 있는 점도 엿보이나, 각 옥개석 하면의 층급받침이 3단으로 약화(略化)된 것은 역시 시대가 뒤로 내려옴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국보 1(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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