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칠원(漆原). 고성(固城) 출신.
임진왜란 때 경상우수영군교(慶尙右水營軍校)로 우수사 원균(元均)의 명에 의하여 소선(小船)을 타고 노군(櫓軍) 10여명과 함께 웅천(熊川)의 적세를 탐지하고 영등포로 돌아오다가 포로가 되었다.
이듬해 7월 야밤에 성석동(成石同)·박검손(朴檢孫) 등 12명과 모의하여 탈출, 육기도(六岐島)와 동래를 거쳐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진영에 도착, 조정으로부터 죄가 논의되었으나 용서받고 이순신을 도와 적정탐지에 공을 세웠다. 그뒤 대솔군관(帶率軍官)을 이어 군관에 영속되어, 노령에 이르기까지 통영에서 관료(官料)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