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9.1m. 제천 시내에서 동쪽으로 영월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약 2㎞ 쯤 가면, 낮은 구릉을 등지고 있는 넓은 대지가 나온다. 이곳은 창락사(蒼樂寺)터라고 불린다. 절터는 현재 논밭과 과수원 등이 자리하고 있어 규모를 알 수 없는데, 구릉 서쪽의 논밭에 제법 규모가 큰 이 석탑이 서 있어 탑내동이라고 부른다. 석탑은 회흑색의 점판암으로 만들었는데, 이 돌은 절터에서 약 8㎞ 쯤 떨어져 있는 용두산(龍頭山)에서 캐온 것으로 보인다.
받침돌은 단층으로, 여러 장의 자연석으로 구성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7층으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돌을 벽돌처럼 다듬은 모전(模塼) 석재는 크기가 같지 않은데, 길이와 너비는 대략 28∼52㎝ 정도이고 두께는 4∼7㎝이다. 1층 몸돌의 남쪽면과 동쪽면, 2층 지붕돌은 석재 일부가 떨어져 없어졌다. 1층 몸돌은 높이가 네 귀퉁이에 있는 화강암 기둥과 같고 너비는 2.8m이다. 네 귀퉁이에는 높이 1.37m, 너비 21㎝ 크기의 단면이 네모난 화강암 기둥이 서 있는데, 이것은 여느 전탑(塼塔)이나 모전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또한남쪽면과 북쪽면에는 화강암으로 문기둥 2개를 세우고 이맛돌을 얹은 높이 1.37m, 너비 1.08m 크기의 네모난 문이 있는데, 문비(門扉)가 달려 있지만, 남쪽면의 것은 없어졌다. 동쪽과 서쪽의 면석은 전체를 모전 석재로 쌓았던 데 반해, 남쪽과 북쪽의 면석은 화강암 기둥과 네모난 문 사이에만 쌓았다. 몸돌의 모든 면에는 회(灰)를 덧칠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이 석탑이 상주 석심회피탑(石心灰皮塔)과 같은 수법으로 만들어진 석탑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붕돌은 위아래에 모두 층단을 갖춘 전형적인 전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추녀는 짧고 좁은 편인데, 수평으로 평박(平薄)하고, 각 귀퉁이에는 위아래로 풍령(風鈴)을 달았던 구멍이 있으며, 아직도 일부에는 풍령을 달았던 철로 만든 고리가 남아 있다. 지붕돌 밑면 받침은 9∼7단이며, 윗면의 층단도 이와 거의 비슷하여, 지붕돌 전체는 15단 내외로 구성되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졌다. 다만 7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한 변이 70㎝ 정도인 낮은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고, 그 중심에 지름 17㎝의 둥근 구멍이 있는데, 구멍 주변에는 연꽃이 조각되었다. 이 구멍은 6층 몸돌까지 뚫려 있으며, 찰주(擦柱)를 꽂았던 구멍으로 보인다. 또한 7층 지붕돌 윗면에서는 꽃 무늬가 뚫새김된 청동 조각이 발견되었으므로, 원래 정상부에 청동으로 만든 상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1967년에 해체 수리되었는데, 당시 5층 몸돌에서 길이 50∼54㎝, 높이 31㎝ 크기의 각 변이 일정하지 않으면서 네모난 화강암 석재가 발견되었다. 석재의 중심에는 한 변이 13.5㎝이고 깊이가 4.5∼5.5㎝인 네모난 사리(舍利) 구멍이 있었지만 그 안에 내용물은 없었다. 이 석탑의 건립 시기는 조성 방법이나 부재의 가공 수법 등으로 보아, 신라 말이나 고려 초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