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정랑, 평창군수,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삼아 대소조(大小朝)로 나누자, 이에 대한 여러가지 미비점을 상주하여 마침내 분조(分朝)의 체면을 갖추게 하였다. 1601년 옥천군수, 1605년 형조정랑에 이어 다음해 평창군수를 역임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앞서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시종한 공으로 위성공신(衛聖功臣)에 녹훈되고, 한흥군(漢興君)에 봉하여졌다. 폐모론이 일어나자 병을 핑계하여 양근(楊根)에 돌아가 치사를 청하였고,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 때의 훈작(勳爵)을 모두 삭적(削籍)함에 따라 삭훈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묘사의 신주를 모신 공로가 참작되어 1627년(인조 5)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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