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빈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관(景觀)
  • 설죽(雪竹)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642년(인조 2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형조참의
  • 출생 연도1570년(선조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완기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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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 조승종(趙承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근(趙近)이고, 아버지는 참봉 조유백(趙惟白)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바로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임용되었다. 그 뒤 정언(正言)·지평(持平) 등을 역임하면서 언관으로 활약하다가,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다가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그 뒤 인조반정으로 다시 관직에 나아가 1632년(인조 10) 형조참의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반대파의 박해로 벼슬에서 물러나 충주에서 은거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한국계항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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