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766년 승지에, 이듬해에는 대사간에 다시 제수되었다가 1768년 좌승지로 옮겨 익릉(翼陵) 기신제(忌辰祭)의 공으로 호피(虎皮)가 하사되었다. 1772년(영조 48) 대사간으로 재직 중 구상(具庠)을 탄핵하는 소를 올려 삭직당하였다가 복직하였다.
이듬해 승지·대사간을 거쳐 1774년에는 등준과(登俊科)에 뽑혔고, 창방(唱榜)에 장원하여 우윤(右尹)으로 승진한 뒤 이듬해 대사헌에 올랐으나 숙배(肅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도군(珍島郡)에 찬배(竄配)되었다가 곧 복직되었다. 정조가 즉위한 뒤 벽파인 홍인한(洪麟漢)·정후겸(鄭厚謙)·윤양후(尹養厚) 등과 일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삭출(削黜)되었다가 1782년(정조 6)에 사면되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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