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익지(益之). 조지유(趙之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상우(趙相禹)이고, 아버지는 장령 조이병(趙爾炳)이며, 어머니는 지성연(池性淵)의 딸이다.
1691년(숙종 1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문음으로 일찍이 관직에 나가 현감으로 재직하던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正言)으로 진출하였고, 1718년에는 강릉부사(江陵府使)로 재직하다 연분(年分)의 실수(實數)를 감정(勘定)해야 하는 도회관(都會官) 임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좌죄(坐罪)되어 파직되었다.
그러나 그 뒤 사간(司諫)·장령(掌令)·헌납(獻納) 등 사간원·사헌부의 직을 계속해서 맡았고, 1719년(숙종 45)에는 사헌 집의로 재직 중 윤선거(尹宣擧)의 서원(書院)을 허물라는 계청(啓請)을 정지하였다 하여 체임(遞任: 관직의 임무수행을 잠시 보류함)되기도 했다.
이듬해 사간(司諫)으로 재직시 부수찬(副修撰) 김동필(金東弼)을 탄핵하였고, 1721년(경종 1) 왕세제가 사제(私第)에서 대궐에 들어가는 책례(冊禮)가 확정되자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로 임명되어 사제를 숙위하였고, 이 후 승지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