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도승지, 병조참지,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헌납·장령으로 옮겼으나 1716년 잠시 체직되었으며 이듬해 장령으로 복직되었다. 이어 사간에 제수되었으나 대론(臺論:사헌부·사간원의 공론)의 문제로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되면서 강등됨)되어 세자시강원의 보덕(輔德)의 일을 맡았다가 사간으로 복직하였다. 1718년에는 학가(鶴駕) 영송시 칭병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체차되었다가 복직되었다.
이어 집의에 제수되었다가 한달 뒤 승지에 올랐으나, 이듬해 관소(館所)의 배종(陪從)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체직되었다가 복직되었다. 경종이 즉위하자 병조참지(兵曹參知), 좌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그 뒤 안변부사로 나갔다가 경종 즉위시 고묘(告廟:국가나 왕실에 큰 일이 있을 때 그 사실을 宗廟에 고하거나 여쭘)를 저지한 노론의 영수 김창집(金昌集)과의 친분으로 탄핵되어 사판(仕版: 벼슬아치의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병조참지에 제수되었으며, 1726년(영조 2)에는 감시(監試)의 시관(試官)으로 활약했다. 그 후 삭출(削黜)당한 부제학 정호(鄭澔)를 비호하다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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