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주경(疇卿), 호는 난재(蘭齋). 조한영(曺漢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헌주(曺憲周)이고, 아버지는 조하성(曺夏盛)이며, 어머니는 윤반(尹攀)의 딸이다.
1736년(영조 12) 통덕랑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 후 정언·지평·승지·판윤·이조참판·대사헌 등 중요관직을 두루 거쳤다. 1755년 예조참판이 되어 북도에 거주하고 있는 향화인(向化人) 자손들의 성관(姓貫)을 사출(査出)하여 성책(成冊)하여야 할 중요한 사명을 맡았다.
1762년 사도세자(思悼世子) 사건 때에는 옥사와 관련하여 국문을 당하였다가 곧 풀려났으나 2년 뒤에 죽었다. 영조는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공로로 국록을 받도록 배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