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7년 문학(文學)·정언(正言)을 거쳐 부교리(副校理)로 재직하다 정미환국(丁未換局)의 여파로 삭탈관작당하였고, 1729년송인명(宋寅明)의 천거로 재등용되어, 수찬(修撰)·지제교(知提敎)·정언·교리를 역임했다. 이 후 1731년에는 부안현감(扶安縣監)으로 재직 중 참혹한 흉년의 상황과 곤궁한 백성들의 황급한 형세를 잘 극복하여 명망을 얻었다.
이듬해 경직으로 복귀하여 부수찬·부교리·이조좌랑·헌납·부응교·집의·사간을 두루 거쳤다. 1734년에는 교리를 거쳐 응교 재직 중 언로(言路)를 열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이듬해 별겸춘추(別兼春秋)·사간·겸보덕(兼輔德)·응교를 거쳐 1737년에 승지에 제수되었다. 그 뒤 1739년에 대사간에 올랐고, 1744년 형조참판을 거쳐 이듬해에 대사헌직을 맡았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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