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익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대한제국기 시강원첨사, 궁내부특진관,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 성건(聖健)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44년(헌종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하원호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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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시강원첨사, 궁내부특진관,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성건(聖健). 조구영(趙龜永)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유학으로서 1877년(고종 14) 경과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3년 장령·교리를 거쳐, 이듬해 옥당에서 갑신정변의 주모자 김옥균(金玉均) 등을 처단하기를 청하는 연차(聯箚)를 올렸을 때 부응교로 참여하였다.

1888년 종묘하향대제친행(宗廟夏享大祭親行) 때 대축(大祝)을 한 공으로 가자(加資 : 품계를 올려 줌)되었고, 1893년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고종이 능원(陵園) 수호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1899년에는 봉상사부제조(奉常司副提調)로서 유지상태를 조사하고 능원을 범하는 자를 적간하기 위하여 이용구(李容九)와 함께 파견되었다.

이듬해 비서승(秘書丞)을 거쳐 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가 되었고, 이어 궁내부특진관으로 칙임관 4등이 주어졌다. 그뒤 사직서(社稷署)·경효전(景孝殿)·종묘서(宗廟署)의 제조를 거쳐, 1905년 봉상사제조가 되는 등 주로 왕실의 의례를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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