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사달(士達), 호는 파서(坡西). 아버지는 평시서영(平市署令) 조일(趙鎰)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으로, 학업을 일찍 성취하여 공직에 천거되었으나 이롭지 않게 여겨 이를 버리고, 자신을 옛 선비의 학문에 맡겨 경전을 연구하여 의(義)를 구하는 데 실천궁행하여 선배들의 추중(推重)하는 바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다시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다.
그 뒤 여러 요직을 거쳐 한성부판관·고령현감·임피현령(臨陂縣令)·고양군수 등을 역임하다가 70세에 이르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승진되었다. 또, 노대신들의 특별한 주청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받았다. 고령에 있을 때에는 풍기를 엄하게 다스렸으며, 근면으로 궁핍함을 면하게 하여 고을이 크게 개선되었다.
특히, 제방을 쌓아 전답 1,000여 경(頃)을 관수하였다. 임피현령 재직 때에는 세속에 젖어 사람들이 학문에 어두웠기에 이에 덕행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대학(上庠)에 진학하는 자가 곳곳에서 속출하였다.
또 고양에 있을 때에는 송시열(宋時烈) 등이 제2차 예송(禮訟)에 패하여 덕원에 유배되자 즉시 관인을 던져버리고, 파산(坡山)의 농가에 돌아가 쉬었다. 그는 천성이 순후하고 재간이 있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람을 대할 때에는 공손하였다. 그리고 오직 시비를 가릴 때만은 확연하여 굽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