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45년 8월 30일에 조직된 좌익계의 군사단체.
설립목적
기능과 역할
총사령 이혁기(李赫基), 부사령 유치옥(兪致玉), 참모장 최영(崔榮), 경리부 이재복(李載馥), 정보부 장도용(張道用), 훈육부 김한영(金漢永), 감찰부 송태익(宋泰翊), 서무부 김철구(金徹龜), 외교부 연정(延禎), 계몽부 이영호(李永鎬), 위생부 차성기(車星基) 등이다.
이 단체는 1945년 12월 26일 서울 중앙중학교에서 전국대표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부대기를 수여함과 동시에 김일성(金日成)·김원봉(金元鳳)·지청천(池靑天)·무정(武丁)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내외 투사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했던 김구(金九)는 군사단체들이 무질서하게 탄생하는 것에 대한 염려를 신중하게 표명하면서 일국일군(一國一軍)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좌익계 군사단체로서의 조선국군준비대가 대한민주청년동맹(약칭 대한민청) 등 우익계의 청년단체들과 충돌하면서 활동하는 동안, 임시정부의 광복군 국내지대를 책임 조직한 오광선(吳光鮮)과 유동열(柳東說)은 1945년 11월 1일 대한국군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에 장차 불리한 처지에 처할 것을 예상한 이 단체에서는 오광선측에 통합을 제의하였다.
12월 30일 신탁통치문제를 계기로 쌍방 대표간에 통합문제를 놓고 형식상의 회합이 이루어졌으나,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이 단체측의 간계로 회합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뒤 이 단체는 대한국군준비위원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국군사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군사준비위원회는 1946년 1월 8일 미군정에서 국방경비대를 창설함으로써 다른 유사단체들처럼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청년운동사』(선우기성, 금문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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