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본. 세로 23cm, 가로 15cm.
구성은 제1편 폭동의 기인(起因) 및 경과의 개요, 제2편 메이지(明治) 39년의 폭도 토벌, 제3편 메이지 40년 한황(韓皇)의 양위 및 군대해산, 제4편 메이지 40년 지방에서의 폭도 토벌, 제5편 메이지 41년의 폭도 토벌, 제6편 메이지 42∼44년의 폭도 토벌 등으로 되어 있고, 맨 뒤에 부표(附表)로서 폭도 토벌 피아손상 유별표가 첨부되어 있다.
제1편에서 일본은 의병의 기인을 네 가지로 요약해 서술하고 있다. 첫째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에 즈음해 불만을 품어 반란을 일으키고, 또는 단체 해산 후 은사금을 소비해 의식(衣食)에 궁한 장교·하사·졸을 주뇌(主腦)로 해 그에 부화뇌동해 그 배하(配下)에 모인 자, 둘째 지방에서 명망이 높은 유생 또는 양반으로서 완고하고 시세의 추이를 모르며, 새로운 시정방침을 좋아하지 않아 도당(徒黨)을 모아서 궐기한 자, 셋째 정치적 야심을 품고 만일을 요행삼아 다른 소요에 편승한 자, 넷째 종래 화적(火賊)이라 칭하고 각지를 횡행하며 약탈을 일삼던 자로, 시세를 이용해 의병이라 자칭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당시 일본인이 한말의병을 보는 시각이 어떤가를 알 수 있다. 한편, 1906년 홍주·순창 등지의 의병항쟁과 1907년 군대 해산으로 인한 정미의병 이래 민긍호(閔肯鎬)·이강년(李康秊) 등이 강원도·경기도·경상도 등지에서 적과 교전하던 사항, 또 차차 전투지역이 확대되어 호남·관동·관북·관서 등지에서 교전하던 전황, 그리고 한일병탄의 국치 이후에도 계속해서 항쟁하던 전라도의 조경환(曺京煥)·안규홍(安圭洪), 경상북도의 김상태(金相泰), 황해도의 이진룡(李鎭龍)·한정만(韓貞滿), 함경북도의 이범윤(李範允) 등의 의병부대에 대한 기사가 적혀 있어, 한말의 의병연구에 귀한 자료가 된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일본인에 의해 편찬된 것이기 때문에 사상자의 숫자에 있어서 우리 의병을 과다하게 기록하고 일본측은 얼마 되지 않는 숫자로 적고 있으며, 제목과 내용에 있어서도 의병을 폭도로 적는 등 신빙하기 어려운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