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선혁명자연맹은 1937년 중국 난징에서 조직된 무정부주의세력의 항일 독립운동단체이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한중 연합전선이 강화되면서 한인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창설하였다. 유자명·정화암·나월환 등 2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다. 김구계열과 함께 활동하며 중국 무정부주의세력과 연대하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반대 입장을 유보하고, 협동전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한국국민당과 조선민족혁명당 두 세력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자임하였다. 1930년대에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여 좌익 정당의 통일에 기여하였다.
정의
1937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무정부주의세력의 항일독립운동단체.
개설
연원 및 변천
기능과 역할
협동전선운동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민족혁명당과 일치하였다. 두 단체의 공조관계는 중간좌파노선이라는 이념적 측면뿐만 아니라 1920년대 이래의 의열단에서의 공동 활동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단일당’을 선호했고, 협동전선의 방법 및 조직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탄력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들은 “통일이 다른 어떠한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견지하였다. 이들은 협동전선의 성사가 양대 세력 즉 한국국민당과 조선민족혁명당의 참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판단하고, 이 두 세력 간의 중간역할을 자임하였다.
1937년 12월 한커우(漢口)에서 조선민족혁명당·조선민족해방운동자동맹 등 좌파계열의 단체와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고 선언서를 발표, 좌익 정당의 통일에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1939년 8월 쓰촨성(四川省) 치장(纂江)에서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조선민족혁명당·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민족전위동맹과 함께 한국혁명운동통일7단체회의에 참가하였고, 9월 성립된 전국연합진선협회(全國聯合陣線協會)에도 참여했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에는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으로 개편했다. 1942년 말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여 유림(柳林)과 유자명이 의원에 선임되었으나,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 의석수와 세력에서 밀려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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