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숙옥(叔玉)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경신대출척
  • 본관평양(平壤)
  • 사망 연도1680년(숙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지|형조참판
  • 출생 연도1625년(인조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숙옥(叔玉). 아버지는 조유헌(趙惟獻)이다. 어려서 족숙(族叔) 참의(參議) 조경진(趙景禛)의 집에서 양육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2(효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7년(현종 8) 정언(正言)에 제수된 뒤 언관의 직책에서 체차되어 외직인 고산찰방(高山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한 달 뒤 경직으로 복귀하였다. 그 뒤 1661년에는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재직하면서 진휼과 창곡관리에 공을 세워 가자(加資)됨과 아울러 숙마(熟馬)가 하사되었다.

1663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지평 신완(申琓)의 탄핵을 받았으나 곧 호조참의로 옮겨갔고, 숙종이 즉위하자 승지로 발탁되었다. 이어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파견되어 단종릉의 사초(莎草)와 사우(祠宇)를 수리하도록 건의하였으며, 1676년(숙종 2) 12월 승지로 복귀하였다.

1679년에는 형조참의를 거쳐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윤휴(尹鑴)·허적(許積) 등이 제거되자 아울러 삭거사판(削去仕版: 벼슬아치의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됨)된 뒤, 장신(杖訊: 장형을 가하면서 신문함)과 낙형(烙刑)을 받다가 죽었고, 그의 아들 조정시(趙挺時)도 복주(伏誅)되었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