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숙옥(叔玉). 아버지는 조유헌(趙惟獻)이다. 어려서 족숙(族叔) 참의(參議) 조경진(趙景禛)의 집에서 양육되었다.
1652(효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7년(현종 8) 정언(正言)에 제수된 뒤 언관의 직책에서 체차되어 외직인 고산찰방(高山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한 달 뒤 경직으로 복귀하였다. 그 뒤 1661년에는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재직하면서 진휼과 창곡관리에 공을 세워 가자(加資)됨과 아울러 숙마(熟馬)가 하사되었다.
1663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지평 신완(申琓)의 탄핵을 받았으나 곧 호조참의로 옮겨갔고, 숙종이 즉위하자 승지로 발탁되었다. 이어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파견되어 단종릉의 사초(莎草)와 사우(祠宇)를 수리하도록 건의하였으며, 1676년(숙종 2) 12월 승지로 복귀하였다.
1679년에는 형조참의를 거쳐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윤휴(尹鑴)·허적(許積) 등이 제거되자 아울러 삭거사판(削去仕版: 벼슬아치의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됨)된 뒤, 장신(杖訊: 장형을 가하면서 신문함)과 낙형(烙刑)을 받다가 죽었고, 그의 아들 조정시(趙挺時)도 복주(伏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