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병조참의,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57년(효종 8)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된 뒤 예조와 병조의 좌랑, 황주판관·병조정랑을 거쳐 정언·지평·장령 등의 언관을 지냈다. 1670년(현종 11)에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집의·사간·무주부사·고성현감 등을 거쳐 대구부사로 있을 때 부패를 일소하고 절의를 권장했으나 오히려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자된 뒤 동래부사로 부임하였다. 당시 왕이 그의 가난함을 걱정하여 특별히 금품을 하사했으나, 이를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왜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한 송상현(宋象賢)의 사당을 중수하는 데 사용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때 관노로 순국했던 석매(石邁)의 자손들을 모두 천적(賤籍)에서 삭제하여 주었다. 그리고 상고세(商賈稅)를 공정하게 거두어 많은 액수를 호조에 보냈으며, 또 자신의 봉급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세금을 대납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다. 이듬해 전라도관찰사에 오른 뒤 승지·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683년 승지로 있다가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갔으나, 왕의 병환 소식을 듣고 풍설(風雪)을 무릅쓰고 상경하던 도중 신창(新昌)에 이르러 갑작스런 병으로 죽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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