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익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홍문관부수찬, 부교리, 임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보(時保)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602년(선조 3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교리|임천군수
  • 출생 연도1565년(명종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5월 2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홍문관부수찬, 부교리, 임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시보(時保). 조팽(趙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종경(趙宗敬)이고, 아버지는 홍문관응교 조정기(趙廷機)이며, 어머니는 강욱(姜昱)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자립하여, 1590년(선조 2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학유에 제수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하직하고 죽음으로써 관직을 지키려고 하였으나 이미 묘사(廟社)가 옮겨졌고 궁성이 비었음을 알고, 국왕이 계신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검열에 제수되었다.

이 후 주서 · 봉교 · 사서, 성균관전적 · 사헌부지평 · 예조정랑 · 전라도사 · 병조정랑 · 홍문관부수찬 · 부교리, 임천군수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한 뒤 병을 얻어 고향에 돌아와 죽었다.

사후 1603년에 호성선무종훈녹권(扈聖宣武從勳錄券)이 내려졌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되었다. 타고난 성품이 깨끗하고 조용하였고, 효성과 우애가 깊었으며 생활이 청빈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