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간,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창(季昌)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양(漢陽)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
  • 출생 연도1727년(영조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계창(季昌). 청백리 조경(趙絅)의 현손이고, 세자시강원보덕 조위봉(趙威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구완(趙九畹)이고, 아버지는 조수홍(趙守弘)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6년(영조 22) 정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752년 부교리(副校理)·정언(正言)을 거쳐 이듬해 수찬(修撰)을 역임한 뒤 부교리에 재차 임명되어서는 『소학(小學)』 교육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곧 인물이 영선(瀛選)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사헌부장령 이택징(李澤徵)의 탄핵을 받았고, 또 지평 이조망(李朝望)의 탄핵이 이어졌으나 영조의 신임으로 무사하였다.

이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교리(校理)를 거쳐 1756년부터 수찬·교리 등을 재차 역임하였다. 그 뒤 사간으로 재직하던 1761년에는 패초(牌招: 왕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일)를 어겼다는 명목으로 삭직되었다가 복직되었고, 이어 수찬으로 있던 1762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행차도중에 폐단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삭직되었다가 이듬해 필선으로 등용된 뒤 승지를 거쳐 1764년부터 대사간직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