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계창(季昌). 청백리 조경(趙絅)의 현손이고, 세자시강원보덕 조위봉(趙威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구완(趙九畹)이고, 아버지는 조수홍(趙守弘)이다.
1746년(영조 22) 정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752년 부교리(副校理)·정언(正言)을 거쳐 이듬해 수찬(修撰)을 역임한 뒤 부교리에 재차 임명되어서는 『소학(小學)』 교육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곧 인물이 영선(瀛選)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사헌부장령 이택징(李澤徵)의 탄핵을 받았고, 또 지평 이조망(李朝望)의 탄핵이 이어졌으나 영조의 신임으로 무사하였다.
이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교리(校理)를 거쳐 1756년부터 수찬·교리 등을 재차 역임하였다. 그 뒤 사간으로 재직하던 1761년에는 패초(牌招: 왕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일)를 어겼다는 명목으로 삭직되었다가 복직되었고, 이어 수찬으로 있던 1762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행차도중에 폐단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삭직되었다가 이듬해 필선으로 등용된 뒤 승지를 거쳐 1764년부터 대사간직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