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승지, 수원부사, 종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지정(持正)
인물/전통 인물
  • 본관횡성(橫城)
  • 사망 연도1714년(숙종 4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승지|종성부사
  • 출생 연도1648년(인조 2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수원부사, 종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지정(持正). 조공립(趙恭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흠(趙嶔)이고, 아버지는 조이건(趙以乾)이며, 어머니는 남두화(南斗華)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6년(숙종 12) 춘당대 문과에 장원하여 바로 정6품인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되었으나, 고묘론(告廟論)에 대한 상소 주도로 대사간 정재희(鄭載禧)의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 벼슬아치의 명단)에서 삭제당하였다. 그 뒤 1689년 지평(持平)에 제수되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자 이광한(李光漢)·김익훈(金益勳) 등 노론계의 훈적(勳籍: 공훈의 내용을 기록한 명단) 삭제를 주창했고, 이어 정언(正言)에 제수되어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였으며, 남구만(南九萬)을 중도부처(中道付處)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어 차사(箚辭)가 과격하여 귀양가게 된 이상진(李尙眞)을 구하기 위한 소(疏)로 체직(遞職)된 뒤 복직되었다가 지평으로 제수되었고, 1690년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어 부교리(副校理)에 제수된 뒤 다시 사헌부지평으로 옮겼고, 이듬해에는 부교리로 재직 중 전라도를 비밀리에 염찰(廉察)하고 돌아와 부수찬(副修撰)에 제수되었다. 1692년 공조참의를 거쳐 승지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황해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694년 수원부사(水原府使) 재직 중 갑술옥사(甲戌獄事)가 있자 장령(掌令) 유집일(兪集一) 등의 탄핵을 받았고, 이어 대관(臺官)으로 재직시 노론 대신 송시열(宋時烈)·민정중(閔鼎重)의 안률(按律: 죄안을 고찰함)을 먼저 발의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귀양갔다가 1697년 석방되었다. 1702년 65세의 노구로 종성부사(鍾城府使)를 그만둔 뒤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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