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의금부사,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어 군정(軍政)을 바로잡고, 조정을 바로잡는 상소로 세자의 신임을 얻어 헌납(獻納)에 제수되었다가 이어 사간(司諫)에 올랐다. 1719년 양역(良役)을 변통(變通)하기 어려움을 논하고, 팔로(八路)의 승도(僧徒)에게 베를 거두어 포흠(逋欠: 관의 물품을 사사로이 사용함)에 보충하기를 청하였다.
이 해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되어 집의(執義)를 예겸하였다. 그 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 당시 화를 입었다가 영조가 즉위하자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輔德)에 임명된 후 승지에 올라 소론의 영수 조태구(趙泰耉)의 죄를 논한 예문관검열 신노(申魯)를 탄핵하여 대립하였다.
이어 밀양부사(密陽府使)로 파견되어 목민업무에 노력하였고, 1728년(영조 4) 청주목사(淸州牧使) 재직시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백성을 편안히 이끈 공적으로 이듬해 숙마(熟馬)가 사급(賜給)되었고, 또 1730년 승지에 제수된 뒤 동지(同知)로 승진하였다가,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호조참판·병조참판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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