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규 정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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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규 정려
조영규 정려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조영규와 아들 조정로 관련 정려각. 사우.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장성 조영규 정려(長城 趙英圭 旌閭)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기념물(1985년 02월 15일 지정)
소재지
전남 장성군 북이면 방장로 655 (백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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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조영규와 아들 조정로 관련 정려각. 사우.
개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조영규(趙英圭)와 아들 조정로(趙廷老)의 정려각으로,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백암리에 위치한다. 1985년 2월 15일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내용

조영규(趙英圭, 1535∼1592)의 본관은 직산(稷山)이고 자는 옥첨(玉瞻)이다. 그는 장성군 백암리에서 조준(趙準)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과에 올라 용천부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냈으며, 청렴결백의 목민관으로 유명하였다. 임진왜란 때 양산군수로 있으면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동래성을 수비하다가 전사하였다. 호조참판에 추증되고 양산의 충렬사에 배향되었다.

그의 아들 조정로(趙廷老)는 아버지의 시신을 다 수습하지 못해 평생 죄인으로 자처하다 세상을 마쳤다. 사후에 선무랑(宣武郞) 빙고별검(氷庫別檢)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다.

이후 1669년(현종 10)에 송준길(宋浚吉)이 이들 부자의 일을 아뢰어 호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이 정려각은 그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건립되었고, 1849년(헌종 15)에 중수되었다. 정려각은 앞면 2칸, 옆면 1칸의 맞배집이며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안에는 충신 조영규와 효자 조정로의 명정편액과 「조씨충효정려중수기(趙氏忠孝旌閭重修記)」가 있다.

참고문헌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문화재도록: 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8)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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