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서 부수찬이 되었으나 왕세자에게 영의정 이천보(李天輔)를 매도하는 글을 올렸다가 대정(大靜)의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1759년 영의정 유척기(兪拓基), 우의정 신만(申晩) 등의 건의로 풀려나와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익선(翊善)에 기용되었으며, 1761년 의주부윤, 1763년 종성부사를 거쳐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1766년 비국부제조(備局副提調) · 승지 · 부제학이 되었다. 이어 형조참판 · 동지의금부사 · 대사성을 역임하고, 1771년 이조 · 병조의 참판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 때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사직이 되었으나 소론의 영수 최석항(崔錫恒) 등의 관직을 회복시킨 일에 대하여 상소하였다가 갑산부에 유배당하여 서인이 되었다. 1774년에 풀려나 이듬해 비변사의 관리로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저서로 『퇴헌집(退軒集)』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퇴헌집(退軒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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