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퇴헌(退軒)
  • 효승(孝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양주(楊州)
  • 사망 연도1775년(영조 5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제학|대사성|호조참판
  • 출생 연도1725년(영조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5월 0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효승(孝承), 호는 퇴헌(退軒). 조희석(趙禧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조태채(趙泰采)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조겸빈(趙謙彬)이며, 어머니는 민계수(閔啓洙)의 딸이다. 박필주(朴弼周)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1년(영조 27)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된 뒤 1754년에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으며, 좌의정 김상로(金尙魯)의 천거로 정언이 되었다.

이어서 부수찬이 되었으나 왕세자에게 영의정 이천보(李天輔)를 매도하는 글을 올렸다가 대정(大靜)의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1759년 영의정 유척기(兪拓基), 우의정 신만(申晩) 등의 건의로 풀려나와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익선(翊善)에 기용되었으며, 1761년 의주부윤, 1763년 종성부사를 거쳐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었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1766년 비국부제조(備局副提調) · 승지 · 부제학이 되었다. 이어 형조참판 · 동지의금부사 · 대사성을 역임하고, 1771년 이조 · 병조의 참판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 때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사직이 되었으나 소론의 영수 최석항(崔錫恒) 등의 관직을 회복시킨 일에 대하여 상소하였다가 갑산부에 유배당하여 서인이 되었다. 1774년에 풀려나 이듬해 비변사의 관리로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저서로 『퇴헌집(退軒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퇴헌집(退軒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