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년(고종 19) 3월, 몽고의 제1차침략군이 철수한 뒤 통사 지의심(池義深), 녹사 홍거원(洪巨源)과 함께 살리타(撒禮塔) 군영에 문첩을 소지하고 파견되었으나 몽고의 요구를 어겼다 하여 함께 억류되었다.
그 뒤 방환(放還)되어 첨사부주부에 오르고, 기거사인(起居舍人) 노연(盧演)과 동행, 1239년 진봉부사(進奉副使)로 몽고에 다녀와서 좌사간이 되었다. 1341년 4월 몽고와의 화의조건에 따라 왕자를 가장한 왕족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이 몽고에 볼모로 갈 때 추밀원사(樞密院使) 최린(崔隣), 장군 김보정(金寶鼎)과 함께 이를 시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