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오위도총부도총관, 지중추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59년 동부승지·한성좌윤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고, 1761년 도승지로서 사도세자의 처형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한때 파직되었으나 다시 대사헌으로 기용되었다.
이어 예조와 병조의 참판을 역임한 뒤 황해도·경기도 관찰사로 외직을 거쳤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지중추부사를 지낸 뒤 형조판서에 올랐다. 사관(史官)은 조영진의 성품이 너그럽고, 의리를 지키며, 공명을 탐하지 않아 풍파(風波)의 시기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운석유고(雲石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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