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정유재란으로 일본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 복역한 문신.
개설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중국(重國). 진주 출신. 성종조에 홍문관 응교를 지낸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리(趙理)이고, 아버지는 조광후(趙光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9년(명종 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 경도(京都)로 잡혀가 복역하였다. 왜상(倭商)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1604년(선조 37) 이후 세 차례나 안남(安南)에 가서 진기한 사물을 견문하였고, 여송(呂宋: 필리핀) · 유구국(琉球國) 등에도 다녀왔다.
1607년에 회답사(回答使) 여우길(呂祐吉) 등이 일본에 갔을 때 조완벽의 본국송환을 간청하여 10년 만에 돌아왔다. 학문이 뛰어났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지봉유설(芝峰類說)』
- 「정유재란기 被虜人 趙完璧의 家系와 삶」(남미혜, 『이화사학연구』 5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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